궁궐

성종의 효심으로 태어난 "창경궁" 야간 특별관람

오돌 2016. 7. 20. 17:10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이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경복궁을 법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하는 양궐 체제를 이어왔다.

그러나 역대 왕들은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에 거처하는 것을 더 좋아하였고,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차츰 창덕궁의 생활 공간도 비좁아졌다.

이에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 비 정희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 등

세 분의 대비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이웃에 마련한 궁궐이 창경궁이다.

창경궁의 또 다른 독특함은 조선시대 다른 궁궐과 주요 전각들이 남향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다.

창경궁의 경우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정전은 동쪽을 향하고,

관청 건물인 궐내각사와 내전의 주요 전각들은 남쪽을 향해 있다.

남.서.북쪽이 구릉이고, 동쪽이 평지인 지세라서 이를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발전해온 궁궐이기에

내전이 외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넓은 것도 창경궁의 특색이다.

   -문화재청 창경궁 안내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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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야간 특별관람행사를 다녀왔습니다.

야간 개장 시간은 오후 7시 30분.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궁궐 야간 특별관람행사 예약 개시일에

어렵게 예약했습니다.

실은 경복궁엘 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간발의 차이로 예약하지 못했습니다.ㅠㅠ

 

 

궁궐의 야경!

날씨가 무더웠지만 부푼 기대감에 창경궁 안으로...

 

 

어둠을 기다리는 청사초롱 줄지어 선 길 따라서...

 

 

궁궐에 어울리는 고목

추정 나이 150년의 회화나무와 130년의 느티나무

정조와 어머니혜경궁이 살얼음판 같은 궁궐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가시는 두 어르신

필름 한 통 찍으면 2만 3~4천원이 들어서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답니다.

그 카메라가 "라이카"라서 제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하얀 소나무 "백송"

원래 고향은 중국 베이징 부근으로

조선왕조 때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하면서 솔방울을 가져다 심은 것이

여기저기 퍼졌다고.

 

 

고양시 송포동에 있는 백송.

천연기념물  제 60호입니다.

이 나무는 세종 때 김종서가 개척한 육진에서 근무하던

장군 최수원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져다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 지역사람들은 당송(唐松)이라고도 부른다고....

 

 

지난 4월에 찍었습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꽃! 꽃!

 

 

 

 

자연학습장으로 된 자생화단

 

 

"대온실"

1909년에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일제는 1907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온 것과 때를 맞추어

창경궁의 전각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마침내 1909년 일반에 개방하였다.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 목적이 궁궐의 권위를 결하시키려는 데 있었음은 물론이다.

대온실은 일제의 불손한 의도 아래 훼손된 창경궁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건축된 지 이미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의미를 지닌 근대의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은 근대문화유산의 이미를 가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온실은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야생화, 자생식물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느티나무"

창경궁 내 수령을 측정할 수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400년 이상된 느티나무로 1600년대부터

이 곳에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보물 제1119호)

이 탑은 조선 성종 원년(1470)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박물관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춘당지"

본래 '춘당지'는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 너른 터에 자리했던 작은 연못(지금의 소춘당지)이다.

지금의 춘당지에는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다.

일제가 이를 파헤져서 큰 연못으로 만들었고,

1983년 이후에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 오늘날의 춘당지이다.

 

 

고수의 포스가 느껴지던 두 어르신

역시 명당에 자리하고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리시는 듯.

 

 

어딜가나 솔밭에 끌립니다.

새벽 안개 자욱한 솔밭 풍경을 찍어야하는데.....

 

 

춘당지 한 바퀴를 돌아오니

영춘헌엔 불을 밝히고....

 

 

영춘헌(迎春軒)

정조가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하기도 했던 곳

 

 

 

 

양화당(養和堂)

창경궁을 창건할 때 건립한 전각으로 통명전의 동쪽에 있다.

통명전에서 생활하던 내명부의 구성원들이 접대공간으로 사용한 건물로 추정된다.

양화당 난간의 아(亞)자형의 문살이 독특하답니다.

 

 

양화당의 이름은 '서거정'이 지었고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通明殿)

보물 제818호

왕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로 명정전 서북쪽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동쪽에 있는 왕비의 침전인 환경전과 함께 남향하고 있다.(위키백과사전에서)

희빈 장씨가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숙종 비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가

사약을 받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고궁음악회를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 국악의 아름다운 선율이 고궁의 밤을 더욱 황홀하게합니다.

 

 

 

 

환경전(歡慶展)

대장금이 중종을 진료한 환경전

조선시대 의녀들 중 유일하게 왕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이가 대장금이다.

대장금은 1515년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출산을 받았고,

1522년 자순대비의 병을 치료한 후 이 공으로 중종의 치료를 전담하게 된다.

대신들은 의원이 아닌 일개 의녀를 주치의로 삼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중종은 의원보다 대장금을 더욱 신뢰하여 마지막까지 대장금에게 진료를 맡겼다.(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환경전(歡慶殿)

환경(歡慶)은 '기쁘고 경사스럽다'는 뜻이다.

 

 

 

 

"창경궁 오층 석탑"

고려시대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으로 이전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원 위치에 대한 기록이 없는 상태여서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이

그저 '창경궁 오층석탑'으로만 불려 왔다.(이데일리 '16.3.15)

 

 

경춘전(景春殿)

명정전 뒤쪽 내전 건물의 하나이며 환경전의 서남쪽에 있다.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며,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경춘전(景春殿)

경춘(景春)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뜻이다.

현판의 글씨는 순조의 어필이다.

 

 

향나무

향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부정을 씻어주는 나무로 사랑받아

궁궐을 비롯한 사대부의 정원, 유명 사찰, 우물가에도 널리 심었다.

이 향나무는 동궐도에서도 보이는 나무로 200년 이상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향나무 안내문)

 

함인정(涵仁亭)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을 떠났다가 창경궁으로 돌아와 지은 전각인데

함인정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성종 15년(1484)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왕산 아래 있었던 인경궁에 있는 함인정을 헐어 이곳에 옮겨와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편전으로 사용했다.

영조가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도 사용했다고...

 

 

함인정은

"인자로움에 흠뻑 취하다"라는 뜻이라고...

 

 

 

 

 

 

 

 

문정전(文政殿)

임금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으로

명정전은 조회를 하는 정전이고,

문정전은 국사를 의논하는 편전이다.

문정전은 창경궁이 창건될 때 건립되었다.

임금이 평상시 거처하던 편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명전전과 함께 중건되었다.

문정전 마당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사건이 일어났다고...

 

 

문정전(文政殿)

문정(文政)은 '문교(文敎)로써 정치를 편다'는 의미이다.

문교는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로써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명정전(明政殿)

창경궁의 정전으로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정전인 명정전에서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가례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힌다"는 의미이다.

명정전이 창경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므로 임금이 중심에서

밝은 정치를 해 달라는 염원을 담은 말이다.

 

 

 

 

 

 

명정문(明政門)

문정전의 정문으로

인조 23년 4월 27일 소현세자의 상을 치를 때

시강원, 익위사, 및 정원, 옥당이 함께 문정문 밖에 나아가 배곡례(排哭禮)를 행하였고,

왕실의 종친, 문무백관 등은 집현문에서 배곡한 일이 있다..(궁궐의 현판과 주련에서)

 

성종 15년(1484) 창경궁을 세울 때에 지은 것이지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광회군 시절 다시 지었다.

건물의 짜임새가 착실하고  조선 중기의 문을 대표할 만하고

짜임새가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궁궐 중문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옥천교에서 본 명정문

 

 

옥천교

모든 궁궐의 마당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법전이 있는 궁궐의 안쪽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 뒤의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가 되라고

궁궐 앞쪽에 일부러 낸 물길로 이를 금천이라 부른다.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이라 부르는데, 이 옥천에 놓인 다리가 옥천교이다.

 

 

도깨비 얼굴

옥천교 무지개 사이에는 나쁜 기운이 궁궐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옥천교 무지개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을 새겼다는데

보이시나요?

무지개 사이에 도깨비 얼굴.

 

 

도깨비를 가까이 불러내었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으니

도깨비는 신비주의 컨셉인가봅니다.ㅎㅎ

 

 

 

깊은 어둠이 내린 궁궐 정원

청사초롱이 빛납니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올라 온 매미

허락된 2주간의 애도기간

누구를 위해 울어 주려나....

아니 청사초롱에 자리 잡았으니

2주간의 축제인가?

 

 

다시 찾은 춘당지의 야경

경주 동궁의 야경을 연상하게합니다.

 

 

영청문(永淸門)

명정전의 북쪽 행각에 난 문이다.

영청(永淸)은 "오래도록 맑다"는 뜻이다.

영원히 맑은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궁궐의 현판과 주련에서)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홍화문(弘化門)

보물 제384호.

홍화문은 1484년(성종 15)에 건립된 창경궁의 정문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불에 타서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다.

 

 

조금은 무더웠던 여름 날

밤의 창경궁 산책은 분명 색다른 경험이고

옆지기와의 연애시절 밤 벚꽃놀이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의미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