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

시와 함께 즐기는 봄꽃

오돌 2021. 4. 7. 14:31

 

 

 

 

진달래꽃 하나

                  정연복

 

꽃샘추위 아직

짖궂은 심술을 부리는데

 

너른 산비탈 어디선가

가만히 피어

 

환환 웃음짖는

연분홍 진달래꽃 하나

 

입이 없어

한마디 말도 못해도

 

온몸이 작은 불꽃 되어

봄기운 출렁이는 깃발 되어

 

겨울의 끝이 다가왔음을

온 산에 알려준다.

 

개나리꽃

               정연복

 

함께 무리지어

도도한

 

진노랑

빛의 물결

 

개나리꽃

덤불 속에 섰다

 

방금 전까지

슬픔에 젖어 있던 나

 

졸지에

희망의 한복판에 있다.

 

목련

            정연복

 

목련이 지독한 생명의

몸살을 앓는 것을

며칠을 두고 몰래 지켜보았다

 

꽃샘추위 속 맨몸의 가지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눈 틔우더니

 

온몸으로 온 힘으로

서서히 치밀어 올라

이윽고 꽃망울로 맺히더니

 

송이송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저 여린 생명의

고독하고 치열한 몸짓

 

목련은

쉽게 피는 것이 아니였구나

그래서 목련은

저리도 당당하게 아름답구나.

 

벚꽃이 훌훌

                   나태주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 던지고

연초록빛 새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민들레에게

              정연복

 

햇살 밝은 곳에서도

그늘진 응달에서도

 

둥근 태양같이

환히 웃는다.

 

함께 모여 있어도

외딴 곳에 홀로 있어도

 

생은 본디 기쁜 거라며

활짝 웃는다.

 

화창한 날씨에도

궂은비 오는 날에도

 

온몸 온 얼굴로

그냥 바보같이 웃는다.

 

민들레야

명랑한 민들레야

 

네 웃음으로 온 세상이 행복한 걸

너는 알고 있을까.

 

라일락 향기

                 정연복

 

밝게 웃는

얼굴도 무척 예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너의 향기

 

은은히 짙으면서도

품위 있다.

 

너의 마음

너의 영혼

 

얼마나 긴 세월

가꾸고 다듬었기에

 

이다지도

좋은 향기가 나는 걸까.

 

명자나무

              장석주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들을 순례하지 말 것.

모자를 쓰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른 과일을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

 

쓸쓸히 걷는 습관을 가진 자들은 안다

불행은 장엄 열반이다.

너도 우니?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인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마라.

 

분홍 팝콘 같은 "박태기나무 꽃"

                                         백승훈

 

햇살 바른 마당가에

박태기 분홍꽃이 피었습니다.

 

예수를 배반했던 유다가 목을 맨 나무라서

유다나무로도 불리는 박태기나무.

 

입도 없는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피어나는 박태기 꽃을 보면

술픈 영화를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밀어넣던 분홍 팝콘이 생각납니다.

 

산다는 것은

슬픔을 견디며 밥을 먹는 일.

밥의 힘으로 보란듯이 다시 꽃 피우는 일.

 

가는 봄을 슬퍼하기엔

아직 그대에겐

꽃 피울 가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영산홍

                나태주

 

세상에는 이토록

고운 사람도 살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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