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

소나기 내리던 날에

오돌 2022. 9. 18. 16:25

구월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오전부터 오후까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나들이계획을 취소했는데

온다는 비는 안 오고 끈적끈적한 더위에

처지는 컨디션을 다독이려 나선

동네 산책길에 잠시 벤치에 앉아 

하늘 바라기를 한다.

남쪽 하늘에 파란 하늘과

동쪽 하늘의 흐린 구름이

서로 밀고 당기며 세력 다툼을 하다

이윽고 검은 구름이 세력을 확장하더니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까운 쉼터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쏟아진다.

오전부터 내리겠다는 비는

심술궂게도 학생들의 귀가 시간을 기다렸나보다.

다행이도 많은 학생들이 우산을 쓰고 간다.

 

잠시 학창시절의 소나기를 추억해 보면

검정 우산은 고사하고 비닐 우산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귀가 시간에 비가 내리면 

교실에서 소나기 그치기를 기다리다

조바심에 한 명이 뛰쳐나가면 

뒤처질세라 모두가 빗속으로 뛰어 들어

내리는 비를 몽땅 맞으며 집으로 가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는 비 좀 맞았다고 감기 걸리는 친구들도 없었고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집에 들어가도 누구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땐 누구나 다 그랬으니까.

 

말이 길어졌나보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소나기를 잘 피했고

소나기가 지나간 산책길에는 

비에 젖은 초목들이 뿜어내는 풋풋한 내음과

빗방울이 맺혀있는 풍경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재미있는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

.

.

남쪽 하늘

북쪽 하늘

비가 내리고

학생들의 귀가

소나기를 간직한 풀잎

소나기가 지나간 하늘

단풍잎

백일홍

솔잎

쑥부쟁이

패랭이꽃

꽃범의 꼬리

이름도 모르고

풀인지 나무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소낙비를 간직한 잎이 싱그롭다.

집에 들어와

마른 돌에 물을 주었더니

작은 섬에 호수가 생기고

몽돌에 눈 웃음이 

피어났다.

빗소리가 듣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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