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겨울 잠에서 깨어나
시린 눈 가늘게 뜨는 산수유부터
영하의 날씨에 첫눈 아래에서 시들어가는 빨간 열매까지
사계절을 보내며 만난 산수유
방콕하며 시와 함께 즐겨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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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조병화
도망치듯이
쫓겨나듯이
세월을 세월하는 이 세월
돌밭길 가다가
문득 발을 멈추면
먼 산 중턱에
분실한 추억처럼 피어있는
산수유...
순간, 나는 그 노란 허공에 말려
나를 잃는다.
아, 이 황홀
잃어가는 세월이여!
.
.
.
아직은 이른 봄, 바람 사나운데
찬비 내린 날 아침 노란 산수유꽃들
새앙쥐 같은 눈 뜨고 세상을 본다. -조창환님의 "산수유꽃을 보며" 중에서-
노란 산수유꽃
여기 봄이 왔다고
여기 봄이 왔다고 -고은님의 "산수유꽃" 중에서-
한여름 따사로운 햇살 아래 푸른 산수유
뭇 시인들의 관심 밖인가?
노란 산수유꽃, 빨강 열매 산수유 시는 넘처나는데
푸룻푸릇 푸른 산수유 시를 못 찾아
사진만 올린다.
우리들의 샹그릴라 117
설태수
빨강 열매들 가지마다 수북한 산수유
대로변 교회 입구에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 중 열매에 눈길 보내는 사람 없다.
찬바람에 내일은 영하의 날씨란다.
열매는 흔들리지만 빛깔은 흔들리지 않는다.
신도들은 흔들리지 않을려고 교회 다니는가.
습관적인가?
낙오될까봐?
저렇게 예쁜 빛깔로 바람에 의연한데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다니는지.
엄마와 가던 아이가, 예쁘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데
성경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모양.
그렇거나 말거나 빨강 열매들 정말 신났다.
여름 한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 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나태주님의 "산수유 꽃 진 자리" 중에서-
겨울 산수유 열매
공광규
콩새부부가
산수유나무 가지에 양말을 벗고 앉아서
빨간 열매를 찢어 먹고 있다
발이 시린지 자주 가지를 옮겨 다닌다
나뭇가지 하나를
가는 발 네 개가 꼭
붙잡을 때도 좋아 보이지만
열매 하나를 놓고 같이 찢을 때가
가장 보기에 좋다
하늘도 보기에 좋은지
흰 눈을 따뜻하게 뿌려주고
산수유나무 가지도
가는 몸을 흔들어 인사한다
잠시 콩새 부부는 가지를 떠나고
그 자리에 흰 눈이
가는 가지를 꼭 붙잡고 앉는다
콩새 부부를 기다리다
가슴이 뜨거워진 산수유나무 열매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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