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걷기

Healing time in Jeju!(성산일출봉에서 이생진님의 시를 읊다.)

오돌 2016. 2. 5. 23:22


제주에 와서 삼 일만에 보는 파란 하늘

하지만 바람이 차갑습니다.

정상까지 다녀오는 시간은 한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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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한 시인이 생각납니다.

성산포를 제 몸보다 더 사랑한 시인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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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설 . 일출봉


일어서고 쓰러지는 것을

승부라 하면

바위는 이긴 거고

바다는 진 것인가

백 마리의 맹수가

아흔 아홉의 기암으로

덤벼들 때


그 때마다 바위는

꼿꼿한 승리


백 마리의 맹수는

파죽지세

바다는 그 때마다

뼈아픈 침묵

아흔 아홉 개의 기암은

꿀 먹은 벙어리


제목 : 기암절벽

                    

한자리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는

기암절벽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도 되었는데



제목 : 사람이 꽃 되고


꽃이 사람 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물고기가 숲에 살고

산토끼도 물에 살고 싶다면


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들겠지

그런데 태어난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산신(山神)에 빌다가 세월에 가고

수신(水神)에 빌다가 세월에 간다


제목 : 낮에서 밤으로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 버린다


제목 : 모두 버려라


옷을 벗는다

지갑을 풀밭에 던지고

바다가 시키는 대로

옷을 벗는다


제목 : 보고 싶은 것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 거다.


제목 : 풀 되리라


풀 되리라

어머니 구천에 빌어

나 용 되어도

나 다시 구천에 빌어

풀 되리라


흙 가까이 살다

죽음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풀 가까이 살다

물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아버지 날 공부시켜

편한 사람 되어도

나 다시 공부해서

풀 되리라


제목 : 외로움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 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 내버린다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둣

바다도 물 속으로 물 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제목 : 부자지간


아버지 범선 팔아

발동선 사요


얘 그것 싫다

부산해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자동차 사이요


얘 그것 싫다

육지 놈 보기 싫어

그것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어머니 사이요


그래

뭍에 가거든

어미 하나 사자


제목 : 우도


끊어졌던 물이

서로 손을 잡고 내려간다

헤어졌던 구름이 다시 모여

하늘에 오르고

쏟아졌던 햇빛이 다시 돌아가

태양이 되는데

우도(牛島)는 그렇게

순간처럼 누웠으면서도

우도야

우도야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제목 : 바다의 오후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제목 : 설교하는 바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제목 : 수평선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제목 : 귀신같은 인상


첫 눈엔 무섭다가

차츰 친해져 버리고


그 절벽

그 굴곡

그 무식

그 잔인


첫 눈엔 무섭다가

차츰 친해져 버리고


사진 정리를 하다가

문득 생각난 이생진 시인

책장에 파묻혀 잊혀졌던

시집을 꺼냈습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PS : 삼십여년전 이생진 님이 시를 배경 음악과 함께 녹음한 테이프 전해 준 친구에게

       이 블로그를 통해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이형!

       홧팅!!!!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