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유수는 청산으로 돌고,
이골 물이 쭈루르르 저골 물이 콸콸
열에 열두 골물이 한데로 합수쳐다.
천방저 지방저 월방저 구부져 방울이 버큼저 떠나갈적
청산유수는 골골이 흘러서 사람의 정신을 돋우아 낸다.
-심청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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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가을 장마가 한바탕 쏟아졌으니
북한산 계곡엔 얼마나 많은 물이 흐를까?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날을 기다려왔다.
분명 계곡의 물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북한산 이골짝 저골짝 물을 모아
천방저 지방저 빠르게도 흘러갈 게 뻔하기에
서둘러 나섰습니다.
옆지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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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미세 먼지는 태풍이 걷어가고
가을 장마로 촉촉해 진 숲속길을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굉음을 내는 물소리와 함께
북한산 입구에서 노적사 입구까지
왕복 6키로쯤 되는 길을 기분 좋게 걸었으니
도시 소음에 찌들었던 귀가 맑아지고
이런저런 공해로 답답했던 가슴 속이 시원하게 뻥 뚫고
심청가 한 대목처럼 속 시원한 하루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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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계곡탐방로 입구부터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처럼
맑은 물소리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작지만 싱그럽게 핀 "닭의장풀 꽃"
물을 좋아하는 봉선화란 뜻을 가진
"물봉선"
무리지어 피어있는 길
물소리 들으며 걷는 상쾌한 발걸음이 가볍다.
야생화 꽃밭에 꽃이 가득 피었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도 구별 못하는
무식한 놈하고는 친구도 하지 말라는데
이놈은 구절초도 쑥부쟁이도 아닌
"벌개미취"란 명찰을 달고 있으니
이래저래 헷갈리는 나는 무식한 놈이 틀림없습니다.ㅎ
아무렴 어떤가?
물소리 따러서 걸으면 되는 것을....
보통 때는 물소리보다 철계단 걷는 소리가 더 컸었는데
오늘은 오직 물소리만이 귀를 울린다.
옥빛 물색이 이런건가?
그냥 손바닥으로 얼굴을 씻고
입 안 가득 들이키고 싶습니다.
물소리 점점 커져 굉음으로 들릴즈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거대한 폭포가 눈 앞에
떠~~~억~~!!!
십수년전 노르웨이에서 산악열차 타고 가다
폭포 구경하라고 열차가 정차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그 폭포보다 훨씬 우렁차고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쎌카는 이런 곳에서...
우렁찬 폭포 소리가 궁금하면....
계곡에 넘쳐 흐르는 이런 사진 찍고 싶었는데..
눈만 돌리면 폭포가 흘러내리고
계곡탐방로 돌계단 위로 흐르다
수많은 등산화에 찢밟히던 고목나무 뿌리 위로도 넘쳐 흐릅니다.
"누리장나무"
물기 가득 머금은 쓰러진 나무 덕분에
살판 난 버섯들....
귀로는 듣고
눈으로 보고
물소리 따라 내가 걷는지
내가 걷는 길에 물소리가 따라오는지
추석이 다가와도 여리기만한 밤송이
태풍도 장맛비도 끄떡없이 견뎌냈습니다.
아주 오래된 돌계단 위에서
-photo by 옆지기-
더 이상 할말을 잊게하는...
가끔은 흑백으로...
이 작은 물들이 모여서
잠시 쉬어가고
슬로우모션이 궁금하다면...
석양에 빛나는 초록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북한산
왼쪽부터 원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한 번 더 눈에 담고.......
누군가는 태풍에 울고
누군가는 가을장마에 울었을텐데....
한 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천방저 지방저 흐르는 계곡따라 걸으며
선계를 다녀 온 듯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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