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

가지마다 붉은 횃불 "목백일홍"

오돌 2021. 7. 30. 23:09

낮에는 삼복더위

밤에는 열대야

노약자와 어르신은 가급적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문자가 폰에 울린다.

노약자도 어르신도 인정하기가 어정쩡하니

새벽도 아니고 대낮도 아닌 조금 이른 아침에

그늘 반 햇살 반 산책길을 걷다가

목백일홍을 만났다.

활활 타오르는 붉은 횃불을 가지마다 피워내는 꽃

"목백일홍"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만

밤낮없이 백일이나 꺼지지도 않는 붉은 횃불을 치켜 든 네놈이

열대야의 주범이 아닐까 누명을 씌우고 싶다만

붉은 꽃 속에 노란 황금 왕관을 감추고 있으니

혹여 진짜 황금 왕관이 피어날까 가을이 오기까지 지켜볼까하노라.

 

 

百日紅

         成三問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 어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 오늘 아침에 꽃 한송이 피네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 서로 바라본지 백날

對爾好衡杯(대이호형배) : 너를 마주하고 좋게 한잔 할지니

 

목백일홍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이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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