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6학년 8반 철원으로 소풍 가다.(노동당사. 백마고지)

오돌 2021. 11. 9. 11:48

겨울 철새들의 도래지

"학저수지"를 돌아서

노동당사에 도착

웃고 즐기던 소풍은

지뢰꽃 시 한편으로

가슴이 찡해지고 먹먹해집니다.

 

지뢰꽃

          철원 시인 정춘근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 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들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낮설지 않는 단어

"지뢰"

비무장지대 GP에서의

군대생활이 익숙할 즈음에 터진

"지뢰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내 발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비무장지대 보급로를 통한 후송작전

그 날이 생각난다.

그 날이 어제와 같이 생생하다.

왕년의 용사들

70년 세월이 지나도

벽에 남겨진 총포 자욱들

그저 바라만 본다.

노동당사 옆

민초들의 삶은 이어지고

6.25 참천국 16개의 펄럭이는 국기 아래

을지무공훈장을 탄 아버지의 아들은

하얀 담배 연기만 뿜어낸다.

대마리 "백마고지"

"백마고지 전투지"

 

1952년 10월 6일 국군 제 9 사단은

중공군 제 38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10월 15일까지 열흘간 396고지를 사이에 두고

12차례 전투가 반복되면서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UN군의 지원을 받은 국군 제 9사단은 마침내 고지를 점령하였다.

전투 과정에서 국군 제 9사단은 총 3천 4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중공군도 1만 4천여명이 죽거나 다치고 포로가 되었다.

극심한 공중 폭격과 포격으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후부터 396고지 일대를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백마고지 위령비 앞에서

고지 위에 핀

한 송이 노란 민들레

DMG 평화의 길

왼쪽으로 아군 진지가 있고

오른 쪽의 북한군 진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잘려나간 금수강산을 들러보고

소풍의 백미 점심은

금수강산에서

능이백숙

오리& 토종닭

 

내일 모래 칠학년 이지만

아직도 돈을 버는 착한 친구를 위하여!

칭찬한다.

그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가을은 벌써 가버린

"고대산" 아래에서

손주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할배들

주말여행 간 아들 며느리 대신 손주 돌볼 시간이란다.

6학년 8반 우리들의 가을 소풍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