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살면서

무념무상( 無念無想) 양주 회암사지

오돌 2023. 5. 5. 14:23

①無念無想萬花方暢
초봄의 싱그러운 신록을 지나
나뭇잎의 푸르름이 짙어지는
완연한 봄 5월의 오후
우리 부부가 찾은 곳은
"양주 회암사지"
지난 2월에 이어서 두 번째 방문이다.
 
조선 초기에는 왕실의 행사를 전담했고
전국의 사찰 중에서 가장 큰 사찰이기도 했고
태조 이성계가 자주 찾았고
상왕이 된 이후에는 거처하기 했다는데
조선 중기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을 태워 사찰을 없앴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이날에 맞춰 시작되는
"왕궁축제" 준비로 관계자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왕궁축제 공연팀의 리허설 소리가 음향시설을 타고
회암사지를 걷는 내내 귀에 울린다.

500년 폐사지에서는
발에 밟히는 돌조각, 기와조각 하나에도 시간이 담겨 있고
눈에 보이는 흔적 하나 하나에도 긴 시간을 담고 있기에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계단을 오른다.

당간지주

왠지 흑백이 끌려서...

괘불대

"괘불대"
 
괘불대는 기우제나 수륙제, 영산재 등 불교도들이
야외에서 지내는 대규모 법회나 의식에서 예배 대상물이 되는 괘불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하는 시설물이다.
따라서 괘불대는 당간이나 당간 지주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
하지만 꼭대기에 용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당이 중심에 있고
당에 깃발과 같은 불교 장멈물이 걸리는 당간 지주와는 달리,
괘불대에는 불화를 건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당간지주는 사찰의 초입부에 위치하지만,
괘불대는 사찰의 주요 불전 앞에 자리한다.
발굴조사 결과 원래의 위치로 확인되었으며,
통돌을 이용해 만든 점이 특징적이다.

괘불대 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깨어진 기와 조각에
무늬가 예사롭지 않아서

한 번 더 찍어봅니다.

회암사지 주변에
하얀 씀바귀가 눈에 많이 띄고

길게 뻗은 길을 따라 가면

좌측에 보이는 돌로 쌓은 구조물.
아마도 천보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흘려보내는
수로가 아니었을까?

오랜 세월
비에 깎이고 바람에 날라갔어도
웅장했던 그 시절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하다.

몇 군데 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는 조형물.
설명문이 없어 무엇에 쓰이던 조형물인지 알 수가 없다.

산의 경사를 깎아서 터를 만들었는지
한 계단을 오르면 넓은 터가 있고
또 한 계단을 오르면 넓은 터가 있다.

금이 간 난간석과 깎여진 태극 문양에서
길고 긴 시간이 묻어나고

난간석의 문양도 각각이다.

검버섯이 가득한 난간석.

"보광전지( 普光展址)
보광전은 광명으로 불법을 시방세계에 두루 널리 비추는 의미로
대부분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발굴조사 결과 보관전은 정면 5칸으로 "천보산 회암사수조기"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보광전지의 남쪽에는 월대가 있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가르고
하얀 민들레 한 송이도 바위를 가르는
세월의 힘이란?

 

당간지주로 시작해서
산 아래 부도탑까지
말 없이 걷는 시간여행
이럴 때 쓰는 말이 無念無想인가?

 

내일은 어린이 날
갓 첫 돌이 지난 쌍둥이와 함께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에게
아장아장 엄마 아빠 손 잡고 걸음마하는 아기가
참 예쁘다고 하니 얼굴에 미소 가득 머금고 감사하다고 한다.
우리가 더 감사한데....

절터에는 하얀 씀바귀가 
어서 오라 하더니
주차장 앞에는 노란 씀바귀가
잘 가라 한다.

 
회암사지(檜巖寺-址)
 
경기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충숙왕 15년(1328)에 원나라를 통해 고려로 온
인도 승려 지공(指空)이 절을 지었고,
우왕 2년(2376년)에 나옹이 중창하였다.
조선 전기까지 전국에서 규모가 큰 절 가운데 하나였으나,
조선 중기에 억불 정책으로 불태워 없앴다.
사적 정식 명칭은 "양주 회암사지"이다. -다음 어학사전-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날에
만화방창(萬花方暢) 꽃향기를 쫒기보다
오백년 폐사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월의 향기에 취해 걸었던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시간
오백년전 마지막 범종 소리가 들리는 듯
무언지 모를 감동이 가슴 한 편에 묵직하게 자리한 
오월의 오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