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

사진 한 장. 시를 만나다. 13편.

오돌 2018. 9. 5. 21:00


동네 산책을 하다 빨간 고추를 보고

성큼 다가 온 가을을 생각합니다.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녘에 바람을 풀어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